인터뷰

'좋은 일' 한번 해볼까?…'리너지'의 탄생

[CEO 인터뷰] 국내 최초 '푸드 업사이클링'…민명준 리하베스트 대표

2020. 11. 04 (수)

민명준 리하베스트 대표. 사진=리하베스트
"리하베스트는 원료 회사예요. 핵심은 밀가루의 대체재인 '리너지 가루'죠. '푸드 업사이클링'이라는 환경 가치뿐 아니라, 제품 자체에 경쟁력이 있어요."

보리차를 끓여본 적이 있다면 한번쯤 느껴봤을 것 같다. 차를 끓이고 나면 보리가 남는데,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애매하다. 고민하다 결국은 버리게 된다. 보리 한 스푼을 보면서도 아깝고 뭔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공장에서 맥주나 식혜를 만들고 난 후 산처럼 쌓인 곡물 부산물은 어떨까? 

"맥주나 식혜를 만들고 나면 곡물 부산물이 나와요. 이 양이 매월 3만 톤에 달하죠. 1년이면 36만 톤이에요. 밀가루로 환산하면 전 국민에게 매년 식빵 21개, 국수 57그릇을 제공할 수 있는 양이죠. 이 부산물로 만든 것이 바로 '리너지 가루'예요."

누군가에게는 음식물 쓰레기였을 곡물 부산물을 보고 민명준 리하베스트 대표는 '푸드 업사이클링'을 떠올렸다. 
◇ 한국 최초 '푸드 업사이클링'하는 '리하베스트'
회사 이름인 리하베스트(RE:harvest)는 말 그대로 '다시 한번 추수를 한다'는 의미다. 땅에서 첫 추수를 했다면, 한번 사용하고 나온 부산물을 업사이클링해 두 번째 추수를 한다는 것. 이름 그대로 리하베스트는 국내 최초의 '푸드 업사이클링' 회사다. 

우리말로 '새활용'인 업사이클링은 '재활용'과 다르다. 버려지는 제품을 재활용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처음 맥주 부산물이 식재료가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먼 옛날, 민 대표가 대학교에 다닐 때다. 친구가 맥주를 직접 만들고 남은 보리 찌꺼기를 보며 지나가듯 말했다. "빵을 한번 만들어 볼까" 푸드 업사이클링은커녕 업사이클링 자체도 생소했던 시절, '반짝' 떠오른 아이디어는 맥주 한잔과 함께 지나갔다. 

십여 년이 지난 후, 민 대표는 회계사이자 컨설턴트가 됐다. 잘나가던 삶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건강이 상했다. 죽음이라는 것을 처음 피부로 느끼자 든 생각은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나' 였다. 

"아파서 걷지도 못하고 누워있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운증후군인 사촌 누나와 얘기를 하는데 '사회 일원으로 일해보지 못한 것이 슬프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도움만 받는데 그게 슬프다고. 사회적으로 좋은 일, 누나 같은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아프리카에 출장 갔을 때가 생각났다. 선진국에서는 음식이 길거리에 버려지는데, 먹을 것이 없어 굶던 이들이 떠올랐다. 그때, '맥주 부산물로 빵을 만들어 볼까' 말했던 친구가 병문안을 왔다. 

"아프리카 출장을 갔었는데 정말 먹을 게 없더라고요. 지구 한 편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는데, 다른 쪽에서는 굶어 죽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했죠. 좋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친구가 병문안을 왔어요. 이거다 싶었죠." 
 
◇ 밀가루 대신 리너지가루…"맥주 부산물로 빵 만들어볼까?" 아이디어가 현실로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에 일하며 생긴 풍부한 경험이 더해지면서 십여 년 전 반짝였다 사라지는 듯했던 아이디어가 구체화됐다. 

식혜와 맥주를 만드는 회사를 찾아다니며 재료를 얻었다. 부산물을 버리느라 추가 비용을 들이던 식품 회사 입장에서도 반가운 제안이었다. '돈까지 줘가며 버리기 아까웠는데 잘해봐라'는 격려를 받았다. 연구 끝에 부산물을 리너지가루로 만들고, 이를 이용해 에너지바인 '리너지바'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제품 생산 과정에 장애인을 영입했다. 리너지바의 최종 검수 작업은 장애인들이 일하는 보호작업장에서 이뤄진다. 모든 리너지바에는 16종류의 귀여운 '검수 스티커'가 붙어있는데, 제품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포장은 제대로 됐는지 장애인들이 꼼꼼하게 살피고 마지막에 이 스티커를 붙여줘야 소비자를 만날 수 있다. 

시장 반응은 성공적이다. 지난해 11월, 리너지바 아이디어로 '경기 업사이클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음식으로 이 상을 받은 것은 리하베스트가 최초다. 서울시와 오비맥주가 함께하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밋업'에 선정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광주시와 디캠프 등이 주관사로 참여하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디데이'에도 선정됐다. 덕분에 초기 스타트업 단계에서 적지 않은 투자를 받았다. 아시아 최초로 미국의 푸드 업사이클링 협회에 가입도 했다. 
 
◇ '친환경+사회적 기업 가치'…'착한 의미' 더해 '좋은 제품' 만드는 기업으로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제품의 품질이 보장되지 않으면 사업을 지속하기는 힘들다. 기업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가치를 내걸고 시작해도, 돈을 못 벌면 기업은 망한다. 언제까지 '좋은 뜻'을 사달라고 읍소할 수는 없는 일. 수많은 사회적 기업이 생겼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이유다. 민 대표 역시 알고 있다. 민 대표는 제품 자체가 가진 성장 가능성을 믿는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우리는 기업이에요. 비영리 재단이 아니죠. 리너지가루는 일반 밀가루보다 단백질 함유량이 1.3배 많고, 식이섬유는 18배가 많아요. 건강한 재료죠. 성질도 밀가루와 비슷해서 면이나 피자 반죽 등 밀가루로 만드는 대부분의 제품을 만들 수 있어요. 설비투자가 이뤄진다고 가정하면 가격도 밀가루보다 60% 가량 저렴해요.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델이라고 봐요. 사회적 가치를 확보하면서 사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레시피 개발에 힘을 쏟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제품 개발을 위해 식혜와 수정과 등을 전통 방식으로 생산해 수출까지 하고 있는 '서정쿠킹'의 서정옥 대표를 고문으로 모셨다. 

소비자 반응 역시 나쁘지 않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에 올린 '리너지바'는 예상을 훌쩍 넘겨 판매됐다. 목표 대비 판매율이 2333%에 달한다. 당초 리하베스트의 '착한' 기업 가치에 공감해 제품을 구입한 이들이 많겠지만, 실제 먹어본 이들은 "맛있다"고 평가했다. 아직 본격적인 홍보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타깃인 '공공선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한 입소문만으로 꾸준한 매출이 나오고 있다. 

"5개 이상 레시피를 개발해 놨어요. 곧 그래놀라를 출시할 예정이고, 고추장이나 곡물라떼 같은 레시피도 개발했어요. 흑맥주나 밀맥주, 보리맥주 등 맥주 종류에 따라 다른 부산물의 특성을 활용하는 방법도 고민 중이고요. 다만 리너지가루라는 '원료'에 집중하는 만큼 다양한 식품에 '원료'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출시 예정인 신제품 그래놀라. 리너지 가루를 이용해 만들었다. 사진=리하베스트
◇ "'명확한 목표·수평적 조직·원활한 소통' 가능한 회사 만들 것"
올해 사업 모델의 타당성을 봤다면,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원료 사업에 들어간다. 조직을 키우기에 앞서 어떤 회사를 만들어 갈지 목표를 세우는 중이다. 

민 대표가 만들고 싶은 회사는 △목표가 명확하고 △수평적이며 △소통이 잘 되는 조직이다. 언뜻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듣기 좋은 말을 모아 놓은 것 같지만, 앞서 기업 컨설팅을 하며 지켜본 조직과 본인의 회사생활에서 비롯된 목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나름의 확고한 방법도 세웠다. 직원에게는 의사결정에 대한 충분한 권한을 주고, 대표가 다 하겠다는 욕심은 내려놓겠다는 것.

"대표가 직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저절로 알 수는 없어요. 사실 조직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이 갈릴 때가 많아요. 대표의 역할은 입장 차이를 이해하고 판을 잘 맞춰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대화가 제대로 돼야 가능한데, 대화가 제대로 되려면 조직 분위기가 수평적이어야 하고, 회사의 목표가 명확해야 해요. 목표가 명확하다면 과정이 힘들어도 대화와 조율의 과정을 거쳐 함께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작은 조직으로 시작한 리하베스트는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를 찾고 있다. 

"사회적 가치 실현과 기업의 영속성에 대해 함께 고민할 동료를 찾고 있어요. 생산, 마케팅, 물류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습니다. 함께하고 싶으신 분들, 문을 두드려 주세요."
박보희 기자 [email protected]